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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부정공>봉산재중건기(鳳山齋重建記)
鳳山齋重建記 通明山下鶉子江之上巨塚廣塋纍纍相望者玉川趙氏之累世藏也初有墳菴數間而經數百載菴亦頹圮而不可支矣每當春秋奠澆之時諸後孫咸曰以吾族之盛如此其苟陋無以示先祖之威儀且非所以致嚴於祀事遒謀重建之計收穀數百斛自甲申秋始役而至乙酉經一歲功吿訖其爲制凡五楹而宏敞軒豁於是齊宿有室燕集有堂孰料夫朽椽敗垣忽復奂焉輪焉燕少長於一室護邱墳於百世哉若夫杜門公諱瓊啓功郎諱硕珩賞春堂諱倫竹溪諱潤璉諸公之軆魄於此己安厝之矣竹村諱崇文龜川諱哲山幷與六臣殉節而竹村則與夫人合窆而在於他處矣龜川則墓無其所子孫就其諸公邱墳之上而設壇以祭之盖於人事可以爲安且神道亦可以爲當焉與其春秋無一薦陳孰如其香火不絶之爲愈也趙氏諸君子誠又能以闔門齊奮之力爲興復一切之擧推堂構必守之志念聿修祖德之事則吾見心法之傳益以密門户之聲益以大所綢繆成就不止如今之爲而己矣夫玉川氏著於南土久矣今因斯役而更復張大之諸君子盍相勉焉 光復後初乙丑年南至前三日 長興 魏啓道 記 봉산재중건기(鳳山齋重建記) 通明山 아래 鶉子江 위에 큰 무덤과 넓은 산소가 얼크러져 서로 바라본 자는 玉川趙氏의 여러 대 산소이다. 처음 몇 간 재각이 있었는데 수백 년을 지내니 기울어지고 무너져 지탱하지 못함으로 매년 세 一제때를 당하면 모든 후손이 다 말하되 『우리 같은 盛族으로 이와 같이 구차하고 협누(狹陋)하니 先祖의 위의(威儀)를 보일 수 없고 제사를 엄숙하게 모실 수 없다.』 고 하였다. 이에 重建하기로 合意하고 수百斛 곡식을 거워 모아 甲申 年 가을에 着工하여 乙酉년에 낙성하니 그 제도는 크고 밝으며 높고도 넓어 이제야 재숙(齋宿)할 방이 있고 연집(燕集)할 마루가 있으니 뉘가 썩은 석가래와 무너진 담장이 문득 다시 빛나고 우렁차 少長을 한 방에 쉬게 하고 산소를 百世에 수호할 수 있게 할 줄을 헤아렸는가. 두문공(杜門公) 휘 경(瓊) 啓功郎 휘 석형(硕珩) 賞春堂 휘 倫 竹溪 휘 유련(潤璉) 諸公의 체백이 이에 이미 편안이 잠드셨을 것이다. 竹村 휘 崇文 龜川 휘 哲山은 六臣으로 더불어 함께 순절(殉節)하였는데 竹村은 夫人과 함께 他處에 합장되었으나 龜川은 묘소가 無傳하여 子孫이 諸公의 산소 위에 단을 싸서 향사하니 대개 人事가 가히 써 편안하고 神道도 또 가히 써 합당하실 것이요 궐향하다가 香火를 올리게 되니 子孫의 마음 든든하고 흐뭇하리로다. 趙氏諸君子는 합문이 분발하여 재실을 흥복하였으니 堂搆必守의 뜻을 미루어 오직 先祖의 끼친 덕 닦을 것을 생각하면 내의 所見은 心法의 전함이 더욱 깊을 것이요 門戶의 聲望이 더욱 클 것이며 계획한바 成就가 如今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玉川氏는 南土에 著名한 氏族인데 이제 이 役事로 인하여 다시 더욱 張大할 것이니 諸君子는 어찌 서로 힘쓰지 아니하겠는가. 光復後初乙丑南至前三日 長興 魏啟道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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